
미국은 가히 '할부의 나라'입니다. 집부터 자동차, 가전제품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할부 시스템으로 움직입니다. 당장 큰 목돈이 들지 않아 처음에는 무척 편리하게 느껴지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이 삶을 묶는 단단한 족쇄이자 '은행에 저당 잡힌 삶'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미국에 건너온 지 1년 만에 내 이름으로 된 첫 자동차를 장만하며 겪었던 시행착오와 현지 자동차 문화의 진실을 정리해 봅니다.
1. 🚙 20만 마일 똥차로 시작된 대륙 드라이브
미국에 들어와 처음 몇 달 동안은 처남이 잘 쓰지 않던 토요타(Toyota) 7인승 승합차(미니밴)를 인수해 탔습니다.
- 10년 세월이 남긴 흔적: 오래전 미국 여행을 왔을 때 처음 타보고 완전히 반했던 차였지만,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내게 왔을 때는 이미 20만 마일(약 32만 km)을 훌쩍 넘긴 그야말로 '똥차'가 되어 있었습니다.
- 무모했던 첫 여행: 한국이라면 진작 폐차되었을 상태였지만, 실내 공간이 넓고 달리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 차를 끌고 무작정 캘리포니아 요세미티 국립공원까지 내달렸으니,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무모하면서도 그립고 다정한 기억입니다.
2. 🚘 미국 도로 위 한국 차의 위상 변화
약 1년 동안 정들었던 밴을 처남에게 되돌려주고, 우리 가족이 탈 중고차를 직접 알아보기로 했습니다.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전 세계 온갖 브랜드의 차들이 모여드는 '자동차 왕국'임을 온몸으로 체감하게 됩니다.
- 과거의 반가운 이름들: 초기에는 한국 차가 보일 때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지금은 브랜드가 사라진 대우자동차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처음 내 돈으로 샀던 '기아 프라이드(Ford 마크를 달고 수출되던 포드 페스티바)'가 도로 위를 달릴 때면 이국 땅에서 만난 고향 이웃처럼 반가웠습니다.
- 달라진 한국 차의 위상: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 현대와 기아의 최신 차량들이 미국 고속도로를 쌩쌩 달리는 모습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됩니다. 많은 미국인들이 한국 차의 성능과 디자인을 인정하고 선호하는 모습을 보며, 해외에 나오면 누구나 자연스레 애국자가 된다는 말을 깊이 공감하곤 합니다.
3. 🏪 미국 자동차 대리점과 트레이드인(Trade-in) 시스템
미국의 자동차 대리점(Dealership)은 제조사가 직접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사업자가 개인 매장 형태로 운영합니다. 한 대리점에서 여러 브랜드의 새 차와 중고차를 함께 거래하는 구조입니다.
- 편리하지만 무서운 트레이드인: 타던 차를 대리점에 주고 원하는 차로 바로 바꿔 타는 '트레이드인(Trade-in)' 시스템이 매우 정교하게 발달해 있습니다.
- 현금 없이 바꾸는 유혹: 당장 목돈이 들어가지 않아 부담 없이 차를 교체할 수 있지만, 기존 차의 잔여 할부금이나 차액이 새 할부에 얹히면서 금전적으로는 손해를 보기 쉽습니다.
4. 📝 크레딧(Credit) 점수와 보증인, 그리고 첫 할부
한국에서 맘에 들어 했던 차를 중고 매장에서 발견했습니다. 주행거리가 얼마 되지 않아 신차나 다름없는 아주 정갈한 상태였습니다.
- 신용 점수(Credit Score)의 벽: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용 점수가 없다시피 했던 터라, 살인적인 고금리 이자율을 감수해야 했습니다.
- 보증인과 60개월 할부: 결국 처남이 보증인(Co-signer)을 서주는 조건으로 60개월 할부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5. 💡 대지 위에 하나씩 새겨지는 소유의 의미
이후 십 수년의 이민 생활을 이어오며 차를 몇 번이나 바꿨고, 지나고 보니 금융 구조를 잘 몰라 피 같은 돈을 흘려보낸 '바보 같은 짓'도 서슴없이 저지르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합리적인 선택이었든 아쉬운 시행착오였든간에, 낯선 미국 땅에 건너와 하나하나 내 이름이 선명하게 새겨진 소유물들이 늘어간다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단단하게 뿌리를 내려가고 있다는 정직한 증표가 되어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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